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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6월 02일
정말 오랫만에 글을 올립니다.
지금 저는 국군부산병원에 와 있습니다. 지난 4월에 디스크로 수술을 하는 바람에 후방병원인 국군부산병원으로 후송와 있습니다. 병장되서 무슨 수술이냐고 묻는 예비역들도 많겠지만 아픈 걸 어떻게 할 수 없더군요. 솔직히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지난 11월 부터 아파서(아래 글 올릴 적 부터 디스크 판정을 받았습니다.) 내색 안하고 살려고 했지만 잠도 못잘 지경이 되니까 견디기 힘들더군요. 그리고 군대에서 아프면 서럽다는 말도 있듯이 군대에 있으면 아파도 시킬 건 다 시킵니다. 참 힘들었습니다. 눈치보랴. 아파도 뺑끼 부린다고 갈구는 선임들 견디랴. 허리가 아픈 건 티가 안나니까 아파서 허리를 못펴는데 꾀병 부린다는 말도 참 많이 들었습니다. 뭐 결국 수술을 받았지만 받기 전까지 마음이 천근만근이었습니다. 전역의 2008년 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년도 같습니다. ...이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역 만리 타국에서 혼자 쓸쓸히 돌아가셨지요. 외갓집에서 이모님께 전화가 안 돼 영사관에 신고 하는 등 무려 한 달이나 걸려 신원을 파악했습니다.(외교부 개새끼들!) 미국 경찰이 숙소 문을 따고 들어가서야 신원이 확인됬습니다. 이미 돌아가셨지요. 사인은 뇌출혈이었고 현지에서 화장했습니다. 그렇게 고국에 돌아왔지만 결혼하지시 않아 제사를 지낼 후손이 없기에 수목장으로 치뤘답니다. 휴가가 줄어들든 말든 나가야 했지만 전화로 뒤늦게 나마 알아 마지막 가는 모습도 보지 못헀습니다.... 이모님께서 고 2 때 비자 갱신하러 오셨을 때 뵌 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솔직히 슬프진 않았지만 한동안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그리고 어머님도 편찮으시고 이런 저런 일이 참 많았습니다. 곧 전역한다는 게 썩 즐겁지만은 않는 나날입니다. 2007년 11월 06일
어느 선배 이야기.
부대 후임에게 들은 이야기. 위 구구절절한 사연과 마찬가지로 후임의 친구는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입대했다. 문제는 빨리 입대한다고 선택한 병과는 다름아닌....공용화기병. 그것도 81mm 박격포병으로 ![]() (문제의 81mm 박격포. 총 무게가 43Kg 정도 된다.)
혹한기 훈련 내내 박격포 포신을 짊어지고 산을 타면서 '여기서 구르면 의가사 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을 계속했다고 한다. 실연 이후에 입대하는 것을 말리진 않겠다만 공용화기병을 하겠다면 전투식량 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 덧: 현역으로서 말하자면 군대와서 삽질하고 시멘트 치는 작업 하나만 배운다. 노가다판 뛸 거 아니면 오지 않길 권한다. 2007년 08월 15일
![]() 제초 작업 중 한 컷. 7월 말 경이던가? ![]() 좌에서 부터 이정근, 송강석, 주성환(전역), 김현옥, 허광욱(가운데 위), 이우영(가운데 아래), 박종환, 나, 정재원 ![]() 역시나 왼쪽부터 나, 이강수(위), 박종하(아래), 이우영, 김준호, 정재원 ![]() 하도 인물이 겹치니 쓸 맘이 영...
본인이 삽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어디에서나 제초 작업 도중 찍었기 때문임. 결코 작업을 좋아한다거나 삽에 필요 이상의 집착을 가지고 있진 않다. 2007년 03월 20일
![]() ![]() ![]() ![]() ![]() ![]() 1.기억 안남. 배경을 보건대 크리스마스 전후에다 등장인물을 보니 12월 군번이 찍은 사진이다. 2.불침번 근무 교대 할 때. 좌로 부터 조준현, 왕규치(황규찬. 군생활 진짜 못한다. ㅡ.ㅡ;), 본인, 주성환, 백규현. 3.이등병 때. 대략 11월 쯤으로 기억한다. 사진에서 자주 보이는 주황색 운동복은 일명 떡볶이이라 불리는 물건. 개인적인 의견으로 군바리가 탈영한 다음에 곤란하라고 저런 색으로 만든 것 같다. 좌로 부터 김일호(중대 블랙홀이라 불린 병신. 지금은 대대로 영구파견나서 얼굴 볼 일이 없다.), 박원석, 송강석, 본인. 4. 위의 사진과 동일한 때 찍은 독사진. 5.비교적 최근의 사진. 설 쯤에 찍은 걸로 기억한다. 맨우측 군복을 입고 있는 당직부사관 아래가 본인. 6. 한 달 전쯤으로 기억함. 이지형 상사님이 찍어다 싸이홈피에 올려 놓은 것. 친구와 전화 중이었을 것이다. 2007년 03월 20일
행정병 아닌 행정병
본인은 26사단 정비대대에 소속되 있다. 덕분에 계란소년님 이야기보고 본인의 이야긴줄 알았다. ㅡ.ㅡ;; 일단 본인의 경우 보직은 수리부속보급병(병과번호: 2145)이다 보니 동감가는 이야기가 많다. 서류와 어긋나는 실 재고현황 때문에 고생해 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것 때문에 실제로 140만원어치 빵구를 내고야 말았다. 사수 양반이 말년 병장이어서 제대로 전해준 것도 없이 그냥 가버린 탓도 있고, 일병 달기 전까지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몰랐다. ㅡ.ㅡ.;; 덧붙여 정확히 어떤 일을 하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의 자대에 있는 행정병들은 팔의 힘이 쌔다. 왜냐고? 창고 정리를 매일 하다보면 팔에 붙는 건 근육 밖에 없다. 장담하건대 전역할 때 쯤에 계란소년 님은 엄청난 팔힘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직수입의 비애라면...일단 100일 휴가 가려면 최소 2달은 기다려야 하고 신병이 오면 후반기 교육을 받은 선임일 가능성이 50%이상이라는 거. 당연히 신병으로 들어온 선임이 100일 휴가 먼저 간다. 그걸 보고 있으면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 그리고 전차수리병에 대해서 말하자면 힘 쓰는 일 말고는 하는 것도 없다. 어짜피 정비에 관한 대부분의 지시는 간부들이 내리고 병사는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다만 탱크 상부 포탑을 들고 작업을 한다거나 파위팩 교환을 하면 며칠 동안 작업의 연속이라는 점이 약간 안습하긴 하다. 몇가지 덧붙이고 싶기도 하지만 혹여 군사기밀 유출로 잡아갈까 걱정이니 말을 줄이겠다. 2007년 03월 18일
근데 허리띠가 없어서 군용 허리띠를 매고 있어야 하는 신세...슬프다...
단편이나 하나 올릴 생각입니다. 뭐 이제 인터넷 상으로 할 게 없다보니 조용히 있다가 갈렵니다. 2006년 12월 25일
지금에서야 안 사실인데 파이어와인(외부링크 란에 등록된 유일한 사이트)이 문을 닫았다. 12월 17일...
군대에서 뺑이치고 있는 동안에 내 인터넷의 고향은 사라지고 말았다.... 울고 싶다....그 많은 이야기들과 사람들, 내 시간들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나 자신에게 시를 하나 띄운다.... 방황이여! 다시 그 젊은이를 찾아가라 그의 발이 오직 자갈만 밞게 하라 나무 아래 한 치의 그늘도 주지 마라 집 없는 자, 고향이 사라진 자는 지평선 가르키는 길이 고향이니 . . 정 따위, 눈물로 씻어버리리라... PS. 미소짓는 독사님(당신은 뭐래도 이 아이디가 가장 좋아요.) 혹여 이 글을 보시고 댓글을 다신다면 파와 이야기는 꺼내지 마시기 바람니다. 진짜 기분 최악입니다... 2006년 11월 03일
2006년 11월 03일
(순서는 앞뒤가 없다. 내 군생활 마냥 꼬였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 ![]() 아마 신교대에 입교한지 얼마 안되어 찍은 사진일 것이다. 왼편의 가장 덩치 큰 사람이 본인. 참고로 여름에 훈련 받는데 지금 받은 옷은 동계 전투복이었다. 당연히 빨아도 썩은 내가 진동하는 일이 잦았다. 결론적으로 시간과 장소, 물자 부족으로 전투복을 한 번 밖에 빨질 못했다. 피부병에 안 걸린게 참 신기하게 생각된다. ![]() 생활관 내에 찍은 사진은 맞는데...아무리 생각해도 언젠지 기억나질 않는다. 거의 모든 하루가 같았기에 명확한 일시를 말하진 못하겠다. 중간에 손으로 브이자를 만든 사람이 본인. 거의 맨 마지막 주를 빼면 모든 날들이 발가벗고 싶을 정도로 더웠었다. 비가 오기를 정말 바랬지만 몸으로 하는 훈련이 전부 끝나니까 비가 오더라... ![]() 사격을 마치고 나서 찍은 사진. 사격 자체는 꽤 재밌었는데 사격장을 오고 가는 길은 죽음이었다. 당시 대낮에 햇볕에 세워둔 온도계가 42도까지 치솟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사격장 가는 행렬의 맨끝에 있었는데 가는 길 한 시간 중에 20분 정도는 뒤쳐지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를 해야만 했다. ![]() 주간 행군 복귀 후에 찍은 사진. 왼쪽이 본인. 민망하게도 탈진해서 쓰러지는 바람에 사진을 따로 찍게 되었다. 다른 동기들은 모두 주간 행군 중 휴식시간에 사진을 찍었다. 옆에 있는 사람은 꾀병으로 거의 모든 훈련을 빠진 인물. 교육 중대 내에서도 말이 참 많았었다. ![]() '훈련은 전투다! 각개 전투!' 지옥의 각개 전투 후 찍은 사진. 위장크림으로 떡칠을 한 걸 지우는데 거진 한 시간이나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각개 코스를 총 6번 돌았고 한 번 돌 때마다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했다. 나중엔 정말 악으로 소리를 지르며 한 기억이 난다. 여담으로 군대에 모든 것은 가라(가짜)라는 말이 있는데 그걸 처음 실감한 곳이 각개 전투장이다. 코스 맨 마지막에 있는 허수아비엔 타이어가 달려있는데, 원래는 그걸 대검으로 찌르고 차야 하지만 조교들이 타이어를 단다고 몇 시간 동안 용접을 했는데 죽겠다는 표정으로 절대 타이어는 치지 말라고 말했다. 결국 허수아비에 달린 타이어들은 훈련병들이 죽을 것 같은 시간을 보낸 동안에 허수아비에 매달린 채로 편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
처음으로 인식표(흔히 군번줄이라고 한다. 군대 내에서는 비하해서 개목걸이라고 한다.)를 받고서 찍은 사진. 훈련소 퇴소식 전날일 것이다. 옆에 서있는 조교는 7소대 훈육이었던 박재헌 병장. 평소에 조용조용하고 얼차려도 별로 안하는 사람이지만 정말 화가 나면 기어가게 만들 정도로 혹독한 얼차려를 주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참 좋은 사람이었다. ![]() 교육 1주가 끝나고 찍은 사진. 아마 금요일이었을 건데 그 뒤로 다가오는 한 주가 얼마나 괴로울지 모르고 찍었던 사진이다. 역시 맨 왼쪽에 괴상망측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이 본인. 와우(WOW)의 인간 남자 춤의 한 동작이다.(실제로 춤을 춘 적이 있는데 조교가 그만 두지 않으면 얼차려를 주겠다고 해서 그만 두었다.) ![]() 야간 사격을 하기 전에 찍은 사진. 정작 탄이 없어서 야간 사각은 하지도 못했다. ![]() 소대 단체 사진. 여태껏 위에 올린 사진은 분대 단위 사진이었다. 이것 말고도 몇 장 더 찍은 사진이 있을 것인데 찾지 못했다.
나름대로 즐겁고 괴로운 일이 있었던 훈련소 기간 동안에 찍은 사진이다. 지금에 와서는 기억도 안나고 동기들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교육대장의 말처럼 군생활 중 가장 힘든 기간이었고, 5주 동안에 군생활 전체를 압축해서 겪은 시기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도 훈련소가 자대보다 낫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안했으니까.(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신교대 조교들은 서글픈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신병 훈련을 두 번 받으라면 못 받겠지만 그 때의 그 내무실로 돌아가겠냐고 하면 돌아가겠다.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그 때....
출처: 불무리 신병교육대(http://cafe.daum.net/VMrtc) 혹여 올해에 지인이 26사단으로 배치를 받았다면 한 번 찾아가보길 권한다. 한 해 기수의 사진은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2006년 0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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